'살아남은 모든 여성에게 존경과 사랑을'
'심시선'이라는 연결고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이 하와이로 떠난다. 그들의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심시선'의 10주기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생전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이라고 제사를 반대했던 그녀였고, 그의 후손들답게 '심시선' 여사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행사를 치르진 않을 예정이다.
두번의 결혼, 서로 다른 성씨로 이루어진 이 가족은 정세랑의 사람들답게 올곧다. 가족 각각의 개성, 단정하고 부지런한 성품과 포기하지 않은 품성, 새와 바다를 사랑하는 다정한 시선과 테러 이후의 삶을 추스르기 위해 애쓰는 마음. 그들의 면면을 거슬로 올라가면 '가모장' 심시선이 있다.
'늘 소문과 분쟁에 휩싸여 사셨던' 등을 돌리고 선 여자. T면과 하와이와 뒤셀도르프를 거치며 늘 논쟁을 불러일으키던 화가이자 작가, 우리는 '존재한 적이 없는' 이 사람, '심시선'을 기억해야 한다.
한 여인의 인생에서 형형색색의 삶의 여러 단면을 마주하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심시선' 여사의 복잡한 가계도만큼이나 그녀에 대한 다양한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과정 자체로 읽는 내내 흥미로웠던 책이다. 책 초입부에 가계도가 그려져있던 것이 의아했었지만, 책을 읽다보니 이내 가계도가 없었으면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인물의 단상이 여기저기 얽혀있다.
그녀를 추억하는 과정에서 그녀에 대한 '가족'들의 생각과 추억이 이토록 다르지만, 그녀를 구심점으로 제각각의 사람들이 뭉칠 수 있다는 점 자체가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우리가 타인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각자가 살아온 인생이 다르고 경험한 것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말이 생각나게 되는 책.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 외에도 군데군데 마음에 담아두고픈 구절이 자주 눈에 띄는데, 복잡한만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구절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중에 네 맘에 드는게 하나라도 있겠지..? 랄까..)
개인적으로 하나를 꼽자면 '경아'가 시선의 차례상에 올릴 품목으로 '커피'를 선택하는 장면
근사한 원두를 천천히 신중하게 고른 다음에, 내리는 연습을 여러 번 할 것이다. 모두 감탄할만한 한 잔을 엄마에게 올리고, 그 다음에 더 내려서 나눠마실 것이다.
개인적으로 커피를 좋아하는 편이라 눈길이 갔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와의 특별한 추억이 담긴 소재를 내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통해 최고의 순간을 선하고자 하는 경아의 진실된 마음이 느껴져 뭉클했던 그런 구절이었다. 그것을 자신만의 추억으로 남기지않고 끝에는 그 감정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하는 마음이 참 예뻤다.
'REVIEW >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책] 터질듯 말듯한 감성으로 가득한, '우아한 거짓말' (0) | 2021.01.10 |
---|---|
[오늘의책] 추리소설의 고전이자 명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0) | 2020.12.05 |
[오늘의책] 당신은 지금의 삶에 충실하신가요? '우리 읍내' (0) | 2020.11.29 |
[오늘의책] 모순투성이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다 - 양귀자 '모순' (0) | 2020.09.03 |
[오늘의책] 박준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0) | 2020.08.31 |